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309] 현명한 겨울나기

걷고 2021. 12. 26. 10:36

날짜와 거리: 20211224 - 20211225 23km
코스: 서울둘레길 화랑대역에서 당고개역까지 외
평균 속도: 3.3km/h
누적거리: 5,73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겨울이 돌아왔다. 어제 기온은 영하 14도, 오늘 아침은 영하 16도. 당분간 추위는 지속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추위가 반갑기도 하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을 보내며 좋은 것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춥지 않아 좋고, 겨울을 느낄 수 없어서 아쉽다. 물론 추위 때문에 생활이 더욱 어려워지시는 분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고 죄송스럽다. 나 역시 추위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계절이 계절의 역할을 하는 것을 느끼고 싶다. 삼한사온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과거의 겨울 날씨 추세 정도로만 이해할 것이다.

어제 서울 둘레길 안내를 하기 위해 추위에도 무릅쓰고 집을 나섰다. 아내는 굳이 이 추운 날씨에 나가서 걸어야만 하느냐고 타박을 한다. 이럴 때 길 안내자라는 역할과 책임이 큰 도움이 된다.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아내도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만약 약속이 없었거나 안내자의 역할이 없었다면 아마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TV와 씨름하며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몸도 마음도 찌뿌둥하다. 약속이나 책임은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켜주며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일기예보를 자주 검색해 보았다. 혹시나 기온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여기저기 검색해 보았지만 그다지 희망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길 안내자로서 취소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아마 참석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길 안내자 역할은 자원해서 맡은 일이다. 자승자박이다. 하지만, 덕분에 이 추운 날씨에도 나와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매우 긍정적인 자승자박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길 안내자를 한다고 하면 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생각을 한다. 안내자라는 역할을 맡은 덕분에 어떤 날씨에도 길동무들과 수다를 떨며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오히려 길동무들이 나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한다. 걷기 동호회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걷기 길 안내자 역할을 1년 반 정도 진행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저녁은 무조건 걷는 날이다. 매주 같은 시간에 같은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생활의 균형을 잡아주고 삶의 기둥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만들어 준다. 자원해서 맡은 역할이 건강한 삶을 만들어준다.

약속 장소인 화랑대역에서 만나 당고개 방면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침 기온이 영하 14도로 매우 추운 날씨지만,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방한 준비를 잘하고 나오니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 우리처럼 서울 둘레길을 걷는 분들이 가끔 눈에 띈다. 삼육대 뒤편 전망대에 올라 시내 광경을 바라본다. 가슴이 활짝 열리며 몸과 마음이 깨어난다. 추위를 극복하고 나왔다는 뿌듯함이 느껴지며 자신에게 칭찬을 건넨다. 전망대에서 해를 바라보며 운동인 듯 춤인 듯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타인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나름 규칙적인 몸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방식으로 추위와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모습이 마치 수행자 같다.

약 30분 정도 산을 오른 후 참석자들은 몸에 땀이 난다며 옷을 벗고 걷기에 좀 더 가볍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두려워하고 물러서면 물러설수록 추위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제압한다. 하지만 물러서는 대신에 준비를 철저히 한 후 당당하게 맞서면 추위는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우리의 활동공간을 만들어준다. 마치 안개와 같다. 두려움에 떨며 오리무중 같은 안갯속을 들어가지 못하면 안개는 더욱 엄습해오며 우리를 제압한다. 하지만 비록 앞이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 전진하면 그만큼 안개는 뒤로 물러나며 길을 열어준다. 인생사 모두 같은 이치이다. 삶의 두려움에 당당하게 맞서면 두려움은 뒤로 물러나며 자신감과 삶을 확장시켜준다. 자기 효능감이 생기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도는 더욱 강해졌고, 사람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나 홀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외로움과 고립감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점점 더 외부와 단절된 채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실내에서만 머물면 몸의 움직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음식도 주문해서 먹고, 외출도 하지 않고, TV나 SNS 활동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면 몸도 마음도 서서히 피폐해질 것 같다. 비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는 못할망정 홀로, 또는 가까운 친구 한 두 명과 함께 주변의 길을 걷거나 가까운 산행을 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활기찬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몸은 움직여야만 한다. 움직일수록 더욱 움직이게 되고, 멈출수록 더욱 멈추게 된다. 용불용설이다.

‘몸은 바삐 움직이고 마음은 고요히’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선조들은 말씀하셨다. 생각할수록 의미 있고 이치에 맞는 말씀이다. 현대인들은 이 말씀과는 반대로 살아가고 있다. 몸은 움직이기 싫고, 마음만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상황은 이런 삶을 합리화하는데 아주 좋은 명분을 제공해주고 있다. 외출을 자제하라니 몸은 집 안에만 있고, 집 안에서 할 일이 없으니 쓸데없는 망상과 고민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몸이 바쁘면 생각은 저절로 멈추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몸은 움직이려 하지 않고 머릿속은 너무 분주하고 정신없고 산만하다.

‘현명한 겨울나기’로 ‘걷기’를 추천한다. 홀로 걷기도 좋고 편안한 친구 한 두 명과 함께 걷는 것도 좋다. 코로나 예방을 위한 좋은 방법이 바로 마스크와 환기라고 한다. 마스크를 쓰고 집 주변이나 가까운 산을 걷는 것이 코로나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꾸준히 걸으면 면역력도 생성되어 코로나 예방에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옛 어른들께서 말씀하신 “몸은 움직이고 마음은 고요히‘를 염두에 두고 일상의 변화를 통한 삶의 방식의 변화를 이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나의 몸과 마음은 선조의 말씀과 일치하는가 아니면 반대인가가 ’ 현명한 겨울나기‘의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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