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정면 (윤지이 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의 정면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둠과 직면하길 싫어하거나 두려워한다. 어둠은 외부의 어둠도 있겠지만,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도 있다. 외부의 어둠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내면의 두려움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 없이는 극복하기가 어렵다. 또한 이런 두려움과 마주하지 못하고 물러서게 되면 될수록 두려움의 크기가 더욱 커지고 결과적으로 두려움에 압도당하게 된다. 작가는 이런 면을 책에서 그려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주인공을 정신과 의사로 설정한 것 자체도 재미있다. 원래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이 든 이유는 정신과 의사가 내담자를 상담하면서, 내담자로 인해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 낸 소설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상담심리사로서 내담자와 상담을 진행하며 가끔은 내담자의 감정이 전달되어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또한 내 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내담자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심리사는 자신의 내면 관리를 잘 유지하고 마음의 주름을 없애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내담자에게 작든 크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정신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만든 이유는 그가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가정 내에서, 병원에서, 또 개인적으로 현명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와 가정 하에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과 의사들이나 상담심리사들도 환자나 내담자를 대할 때 외에는 일반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사고를 하며 살아간다. 그냥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가정 내에서, 사회 속에서, 개인적인 관계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살아나가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물론 개중에는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있어서 삶과 전문성이 합일이 되어 일상사에서 아주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본 사람들 중에는 아직 그런 사람들은 없었다. 이런 면을 좀 더 확장해서 판단해보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직업이나 전문성을 합일시켜 일상사에 적용시키며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생활과 개인 생활은 분리되어야만 전문가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분리된 사고가 건강한 삶을 만들어 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가정 내에서 가족들을 대하는데 환자나 내담자들을 대하듯 한다면 그 가정은 결코 건강한 가정이 될 수가 없다. 친구들과 만남에서 마찬가지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전문 직업인과 자신이라는 개인이 분리되지 않는 한 단 한순간도 내면의 휴식 공간을 만들어 낼 수가 없어서 금방 소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누구나 삶 속에는 일과 휴식이 공존해야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개인과 직업인으로서의 건강한 분리는 건강한 삶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사람들은 천 개의 얼굴을 갖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이중적이다, 이기적이다,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흉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시각은 잘못된 시각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따라 다른 모습과 행동 양식을 보이며 살아가야만 한다. 또 이런 방식이 건강한 삶을 만들어 준다. 한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한 개인이자, 아빠이고, 남편이고, 아들이고, 종업원이고, 사장이고, 상담심리사이고, 프리랜서이고, 친구이고, 형이고 동생이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 양식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건강한 모습이다.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로 어릴 적 트라우마를 겪고 살아간다. 가끔 어린 소년이 나타나서 자신을 바라본다. 그 소년은 내면의 어둠이자 그림자이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가 생각난다. 천재 수학자를 늘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인공에게만 보이는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서도 어린 소년은 주인공을 늘 바라보거나 가끔 옆에 다가오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그 소년의 눈만 응시할 뿐이다. 피하지 않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행동들은 자신 내면의 그림자를 밝혀나가는 과정이다.
부인과의 관계, 부인과 그의 남사친과의 관계에 대한 갈등과 질투심, 술과 약에 의존하는 정신과 의사, 자신의 환자가 자신의 치과 의사라는 사실이 매우 혼란스럽다.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프를 구입해서 아파트 벽면을 타며 스스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시도 등을 통해서 주인공은 자신의 어둠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있다. 자살이라는 쉬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 두려움을 무릅쓰고 정면 돌파하려는 시도를 용감하게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내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하며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삶 속의 수많은 갈등과 내면의 두려움, 전문 정신과 의사로 소의 자신조차도 내던지고 당면한 삶의 문제에 직면하며 하나하나 어둠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있다.
이 책을 완독 한 후 처음에는 어떻게 후기를 써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그간 글을 써온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정리가 되지 않고 뭔가 혼란스러울 때 그냥 노트북을 열고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면 저절로 정리가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번에도 책 리뷰를 쓰면서 같은 방식을 택했다. 그냥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나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글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마치며 저절로 정리가 되었다. 삶은 어둠과 밝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둠은 피하는 것이 아니고 직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은 얽혀있는 실타래처럼 복잡한 것 같지만, 실은 모두 내면의 어둠이 만들어 낸 허상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어둠과의 직면이나 투쟁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도를 하면서 삶의 활기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일단 이런 힘을 얻게 된 이후에는 다른 그림자를 만나도 편안하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높은 산을 오른 사람은 그 앞에 놓인 어떤 높은 산도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일단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삶에서 앞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는 것이 중요하다. 내디딘 만큼 안개는 걷히며 길을 보여준다. 어둠의 정면을 마주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