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휘슬 블로어 (Whistle Blower)
수전 파울러 (Susan Fwoler)는 자신이 근무했던 우버의 성폭력과 성차별, 잘못된 기업 문화를 고발하는 글을 써서 우버의 대표이사를 끌어내리고 기업 문화를 개선한 사람이다. 그녀는 우버에 대한 내부 고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했다. 그녀는 우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휘슬 블로어는 ‘경종을 울리는 사람’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는 회사를 퇴직한 후 다른 기업에 근무하면서도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자신의 비겁함이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드디어 글을 쓰기로 결정한다.
“나는 우버에서 성희롱과 괴롭힘을 당했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싸워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우버를 그만두고 나와서 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것뿐이었다. (.....) 그 순간에 내 성품은 명백했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싫었다. 용기 없는 사람, 일어서서 옳은 일을 할 수 있는데도 겁을 먹어서 그렇게 못하고 있는 사람, 끔찍한 환경에서 도망쳐 나온 뒤 아직 그것에 있는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사람 (........) 나는 만약에 우버에 아직 남아있는 친구나 동료 중 또 한 명이 목숨을 버린다면, 그런데 그것을 막기 위해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내 책임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문 중에서)
그녀는 우버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이미 자세하게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성희롱과 여성 차별에 대한 고충 상담을 인사부에 신청했고, 담당자나 부서장들이 겉으로는 면담에 응하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내용들을 모두 문서로 작성해서 모아 두었다. 자료들을 꾸준히 수집하는 것의 필요성을 이미 대학생 시절에 겪었던 대학 당국과의 싸움에서 터득했던 것이다. 글쓰기를 좋아했고, 작가가 꿈이었던 저자는 그간 모아 두었던 자료를 바탕으로 감정을 배제시키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게재한 이후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 수많은 언론사와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취재 요청과 응원이 발생한 것이다. 아마 본인도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TV Star가 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고 내부 고발을 통해서 기업 문화가 변하고, 근무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편안하게 근무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 이후부터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올리게 된 상황 자체가 이미 끊임없는 전쟁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성희롱이나 여성 차별 문화 자체가 없었다면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일로 인해 상처 받거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린 후부터 기업의 방해공작과 사설탐정들을 고용해 저자뿐 아니라 저자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일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아직도 공정함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우버의 CEO는 전직 법무장관이 근무하고 있는 로펌에 기업 문화에 대한 조사를 맡겼고, 그 회사는 공정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보고서 이후 그간 우버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1,000만 달러의 합의로 종결되었다.
무엇보다, 우버의 역기능적인 기업 문화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제안이 가장 먼저 언급되어 있었다. 대표이사의 권한 범위를 평가하고 조정해야 한다는 홀더 보고서가 공개된 직후 대표이사는 무기한 휴직에 들어갔고, 6월 21일에 주요 투자자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임했다. (본문 중에서)
기업은 새로운 CEO를 임명한 후 대대적인 기업 문화 개선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또한 우버는 드디어 성적 괴롭힘에 대해 강제 중재 조항을 없앴다. 한 여성의 용기 있는 행동이 우버뿐 아니라 수많은 기업 문화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녀는 대표이사의 사임 소식을 듣고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홀가분함을 느꼈다. 긴 전쟁에서 벗어난 후련함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겪고 견딘 모든 일이 중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한한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내 인생 전체가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겪은 모든 일에서 교훈을 얻었다. (......)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안 좋은 일을 무언가 좋은 일에 쓰이는 재료로 바꾸어내었다. 긴 시간을 지나 처음으로,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내 삶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고 느꼈고, 자유를 느꼈다.” (본문 중에서)
그녀는 대학교 시절부터,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불합리와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며 살아왔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불편함을 야기시키는 사람들과 조직들만 있다. 성희롱과 성차별, 그리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세력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왔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그녀의 삶 자체가 참 안쓰럽기도 했고, 왜 그녀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할까라는 안타까움도 느꼈다. 실은 많은 사람들도 그녀와 같거나 비슷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고 생존하기 위해 무조건 참고 지내거나, 가스 라이팅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조직이 모든 것을 제공하는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인간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환경에 자신을 억지로 구겨 맞추며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아간다. 우리네 대부분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녀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감히 어느 누구도 대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울 용기를 쉽게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기업에게는 직원들이 편안하게 근무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라고 경종을 울리고 있고, 각 개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포기하지 말라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런 경종의 여파인지 최근에 조선일보에 내부 고발과 관련된 칼럼이 게재되었다.
“미국은 내부 고발의 천국이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근로자들이 비밀유지 족쇄에서 벗어나 기업 비리를 자유롭게 고발할 수 있게 하는 ‘침묵 중지 법 (Silence No More Act)'을 제정,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요즘 미국 언론은 알고리즘 조작 등 페이스북의 치부를 고발하는 내부 직원의 폭로를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조선일보, 20211111)
그녀는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며 견디고 싸우며 살아왔다. 힘든 상황에 마주칠 때마다 철학에 의지하며 자신의 방식이 올바른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확인받으며 의지를 다져나가기도 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고,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는 아주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실천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 모두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환경 속에 살아가면서도 마치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거나, 무시하거나 또는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이 투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힘든 과정을 겪으며 자주 떠올린 글이 있다. 그 글은 아마 그녀가 우리 모두에게 외치고 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나는 나의 삶과 결정이 어떤 종류이든 외부의 힘이나 외부의 요인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달려있기를 원한다. 나는 다른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 나 자신의 의지를 실행하는 도구가 되기를 원한다. 나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기를 원한다. 나는 나 자신의 목적에 의해, 나 자신의 이유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자유의 두 가지 개념, 아이제이어 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