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285] 지리산 둘레길 🍎7일 차 8코스
날짜와 거리: 20210930 13km
코스: 운리에서 덕산
평균 속도: 2.2km/h
누적거리: 5,06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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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도 비가 많이 왔다. 이번 길 걷는 기간 동안 날씨 운이 매우 좋은 편이다. 밤에는 비가 퍼부어도 아침에 걷기 시작할 때쯤 비는 멈추고 날씨가 갠다. 날씨도 걷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날씨가 나쁘다고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악천후 속에서 루트가 폐쇄된다면 그 길을 걷는 무리함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길은 자연이 우리에게 ‘걷기 좋은 날씨’라는 멋진 선물을 내리셨다. 잘 걷고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며 세상과 나누라는 묵언의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길동무와 함께 앞으로 남은 코스를 점검했다. 지금 속도로 봐서는 하동까지 걷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합의를 하며, 이번 지리산 둘레길 1차 프로젝트는 하동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무리하지 않고 끝나는 날까지 아무 사고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안주인의 배려로 빨래는 깨끗하게 빨고 뽀송뽀송하게 말려져 돌아왔다. 세탁기와 건조기 덕분이지만, 그런 배려를 해 주신 안주인의 마음이 너무 고맙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생각이 났다. 비를 제법 많이 맞고 걸었다. 세탁기가 있는 알베르게도 있고, 간혹 건조기까지 있는 곳도 있지만, 그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오랜 기간 기다리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빨거나 말리지도 못한 상태에서 비닐봉지에 넣어 이틀 정도 들고 다니다 사설 펜션에 머물 때 돈을 지불하고 세탁과 건조를 부탁했다. 돌아온 빨래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여러 사람들 빨래를 한 번에 빨고 건조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그 이후부터는 직접 빨고 말리거나, 마땅치 않으면 빨랫감을 들고 다니며 날씨가 좋은 날을 기대하며 보냈다. 어찌 되었든 약 40일간 무사히 걷고 완주할 수 있었다. 힘든 고비도 지나면 추억이 된다. 그리고 어떤 힘든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상황이 문제라기보다는 상황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자신의 문제이다. 삶 속의 스트레스도 마찬가지이다. 스트레스가 문제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태도가 문제를 발생시킨다.
펜션 안주인은 약간 거동이 불편하시다. 사장님은 모 체고 교장 출신이라고 한다. 두 부부가 서로 아끼고 정겹게 존중하며 살아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설거지를 우리가 했다. 비록 주인과 손님이지만, 그 벽을 허물고 나면 그저 같은 사람들이고, 존중받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들은 동등한 존재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과 우리 각자가 지닌 생각의 프레임이 분별심을 만들어낸다. 단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된다. 우리의 설거지 덕분에 안주인은 함빡 웃음을 짓고 고마워하신다. 우리가 먹은 자리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사장님께서 어제 우리를 픽업했던 운리마을까지 태워다 주신다고 한다. 펜션을 나오기 전에 주인 부부와 함께 인증사진을 찍었다. 정원이 아름다운 펜션에서 마음씨 고운 주인을 만나 솜씨 좋고 맛 좋은 음식을 먹으며 부담이 되는 빨랫감까지 해결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경쾌하고 즐겁다. 사장님 부부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오늘은 운리에서 덕산까지 걷는 날이다. 처음부터 함께 걸었던 길동무의 건강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걱정된다. 새로 합류한 두 길동무는 차량으로 이동해서 오늘 머물 숙소에 먼저 도착한 후 거꾸로 온다고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걷고 있는 우리를 위해 숙소와 간식 지원을 자청한 것이다. 그 마음도 너무 고맙다. 덕분에 우리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 걸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같이 걸었던 길동무가 함께 걷겠다고 한다. 내가 곰에 잡혀갈까 걱정된다고 한다. 그 마음도 고맙다. 지원조는 막걸리 한 병, 김치, 떡, 간식 등을 챙겨주며 안전 걷기를 당부한다. 걷는데 식사와 숙소를 누군가가 준비해 준다면 이미 걷는 일의 반은 해결된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발로 걷기만 하면 된다. 이보다 더 편한 장기 도보는 없을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 길에도 호텔에 머물며 차량으로 루트까지 안내해주고, 마치는 곳으로 픽업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런 순례는 순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순례자가 아닌 단지 관광객이다. 그런 방식으로 걸으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며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되고, 본 후에 성찰과 반성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 이것이 순례의 본질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당당한 직면과 극복이 여행의 참 맛이다. 길동무들의 지원이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함께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남은 코스를 걷는 2차 프로젝트 시에는 지원조 없이 처음부터 함께 걷자고 얘기할 생각이다.

어제 내린 비로 하늘은 너무 청명하고 구름과 하늘의 경계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산의 능선과 푸른 하늘의 경계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높고 푸른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을 정도이다. 길에는 밤과 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 길가 감나무에 수많은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견디지 못한 성급한 감은 바닥에 떨어진다. 소나무 숲길에 들어간다. 이름 모를 새들이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지 경계하는지 조용한 울음으로 교신한다. 그 소리에 집중하며 걷는다. 순간 세상과 끊어진다. 이름 모를 새들과 곤충 소리가 세상의 시름을 잊게 만든다. 잠시 청각 명상을 해본다. 마음이 맑아진다. 시끄러운 마음은 고요함으로 변한다. 길가에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임도를 관리하시는 분들이 임도 주변의 잡초와 크게 자란 풀을 베여내며 길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 분들의 수고로움이 없다면 숲으로 우거져서 길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분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소나무 숲길은 이번 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솔잎들이 바닥에 흩어져 나름대로의 패턴을 보이며 아름다운 길을 만든다. 평탄한 길 위에 솔잎이 가득하고 오른쪽에는 작은 돌로 무릎 높이의 축대를 만들어 길을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다. 우리는 이 길을 ‘명상길’로 불렀다. 걷기 명상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인적은 없고, 자연의 소리는 가득하고, 길은 편안하고, 산의 숨소리가 들리고, 이름 모를 새와 곤충들의 울음소리 가득한 이 길을 걸으며 함께 오지 못한 길동무들이 많이 생각났다.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이 길을 걸으며 길이 끝나는 것이 너무 아쉬워 매우 천천히 음미하며 걸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맛있는 과자를 아껴 먹듯이 우리는 길을 아껴가며 걸었다. 끝나는 지점에 백운계곡이 나온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계곡 물소리가 힘차고, 흐르는 물의 기세가 대단하다. 잠시 백운계곡의 물을 바라보며 물소리를 감상한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원한 물소리다. 또 길동무가 생각난다. 함께 걷지 못해 너무 아쉽다.

백운계곡을 지나니 산죽 군락지가 나온다. 좁은 길 양쪽에 산죽이 가득하다. 그 길을 걸으며 자연 속에 묻혀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마근재로 내려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준비해 온 막걸리를 마신다. 힘들고 위험한 길은 모두 지났다. 지금부터는 평지로 된 내리막길이다. 길동무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김치와 안줏거리를 내놓고 간식과 함께 막걸리를 먹는데 지원조가 도착해서 좀 더 내려오라고 한다. 밑에 식사하기에 좋은 정자가 있다고 한다. 주섬주섬 챙기는데, 그새를 못 참고 차를 몰고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올라온다. 반갑고 고맙고 즐겁다. 마근담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마근담은 원래 사방팔방 산으로 둘러싸여 산골 벽지에 위치해 막힌 담으로 불리던 데서 유래해 지금의 마근담이라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 중에서 인용) 지원조가 막걸리, 맥주, 안줏거리를 준비해서 멋진 성찬을 준비해 놓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파안대소하며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다. 어떤 삶을 살았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든, 남자든 여자든, 선배든 후배든 상관없이 우리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된다. 걷는 것 이상 웃고 떠들었다. 심신 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지원조 두 명은 숙소로 돌아가고 나와 길동무는 두 시간 정도 내리막길을 걸어 숙소까지 걸어간다. 살아왔던 얘기도 하고, 지금 하고 있는 각자의 일 얘기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얘기도 한다. 특히 내가 걷기를 통해 심신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하는 취지를 정확하게 이해한 길동무는 격려를 해준다. 그런 마음이 너무 고맙다. 미래 일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가족이나 주변 가까운 지인들의 격려와 응원이 힘이 되어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 외에는 없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단 1초 후도 미래이다. 그런 불확실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지와 사랑, 격려, 그리고 묵묵히 기다려주며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마음이다. 이런 태도는 자식들과의 관계에도 해당된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해당되는 진리이다. 길동무들의 고마움을 찐하게 느낀 하루다. 고맙고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