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83] 지리산 둘레길 🍎5일 차 6코스 ~ 7.1코스

걷고 2021. 10. 9. 18:54

날짜와 거리: 20210928 19km
코스: 지막마을 - 성심원 - 어천마을
평균 속도: 2.6km/h
누적거리: 5,03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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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여곡절 끝에 산청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모텔에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한 모텔에서 잠을 자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가볍다. 산청 시내에 들어가서 식사할 곳을 찾았다.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백반 집을 운 좋게 찾을 수 있었다. 만둣국과 조기, 그리고 밑반찬이 나오는 식당이다. 터미널 근처 식당치곤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 식사 후 근처 택시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지막마을로 향했다. 어제 길을 마친 지점까지 다시 간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하고 싶기에 그 길의 어느 지점도 건너뛰기 싫었다.

벼가 익어 고개 숙인 황금빛 벌판을 눈에 담으며 따라 걷는다. 주변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산이 감싸고 있고, 논에는 풍요로운 곡식이 고개를 수그리고 있고, 구름은 무심하게 흐른다. 둘레길 안내판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가끔 문 밖에 나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난다. 집 앞에서 청소를 하고 계신 어르신께서 먼저 인사를 하니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인사를 받아주신다.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 물어보니 집 축사에서 송아지를 키우고 있다. 오랜만에 축사에서 송아지를 봤고 울음소리를 들으니 정겹다.

대장마을을 지난다. 작은 마을이지만 담벼락에 벽화가 예쁘게 그려져 있다. 마을회관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는다.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배낭과 스틱을 보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우리는 노숙자이고 걷는 사람들이다. 중간에 공사하는 구간이 있어서 길을 놓칠까 염려된다. 다행스럽게 작은 안내 표지가 있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고맙다. 경호 마을 주변에 들어서니 래프팅 하는 레저 회사와 민박집들이 많이 있다. 지금은 비수기이고 코로나로 인해 고객들이 없어서 마치 죽은 도시 같다. 경호 2교 위에서 강을 보며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산청 둘레길 안내소를 표식을 발견한다. 가는 길 방향에서 조금 다른 길로 가야 한다. 둘레길을 걸으며 정식 루트가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지만, 스탬프를 찍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동한다.

근무하시는 분들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감을 먹으라고 내어주시고, 길에 대한 지세한 안내도 해 주신다. 지리산 둘레길에 대한 설문지 부탁을 하셔서 기쁜 마음으로 답을 한 후에 오늘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숙소 정보를 수집한다. 설문지를 만들고 작성을 부탁하시는 모습에서 이 길을 잘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보인다. 또한 안내소에는 장승 모양의 둘레길 표식이 여러 개 놓여있다. 오래된 표식이나 보이지 않는 표식을 새 것으로 교체해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길 안내를 관리하고 있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여직원 한 분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며 둘레길 엽서를 선물해 주신다. 감사한 마음에 아침에 산청에서 구입한 단팥빵 한 개를 드리니, 다시 쿠키를 선물해 주신다. 주고받는 마음이 아름답다. 같이 사진을 찍는다. 따뜻한 마음과 미소 짓는 친절한 얼굴이 눈에 선하다.

다시 길을 걷는다. 걷다 보니 눈에 익은 길이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고 어젯밤에 머물렀던 산청으로 다시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길이 정식 루트임에도 그 사실을 잊고 안내 표식만 따라 걷고 있었다. 어젯밤에 머물던 숙소, 숙소를 찾기 위해 힘들게 걸었던 길들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에 홀린 느낌이 들어 헛웃음을 짓는다. 불편한 마음은 없고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택시 타고 갔던 길을 두 시간 넘게 걸어 다시 그곳으로 왔다. 우리네 삶도 그럴 것이다. 가야 하는 길 인 줄도 모르고 가다 보니 그 길이 갈 길임을 알게 된다. 길을 걷다가 아담하고 예쁜 커피숍을 발견했다. 5일 만에 처음으로 품위 있는 곳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로움을 만끽한다. 노숙자이자 등산복 차림의 우리를 젊은 여주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배낭을 커피숍 밖에 내려놓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배낭 주변에서 편안하게 잠에 들고, 우리는 안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우아하게 마신다. 아침에 산청에서 사 온 꽈배기와 단팥빵을 들고 와서 여주인에서 꽈배기를 나눠주고, 단팥빵을 먹으며 점심을 대신한다. 카페에 멋진 그림이 있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길동무는 커피 맛이 맛있다며 연신 칭찬을 쏟아낸다. 여주인도 고맙다고 화답한다. 서로 즐거운 마음으로 인증 숏을 찍는다.

인사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걷는 사람은 길 위에 있어야 한다.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걸어야 한다. 한 곳에 머무는 사람은 걷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머무는 사람들이다. 지곡마을에 들어선다. 지곡 사가는 길까지 공사 중인 길을 걷는다. 지곡사로 진입하며 저수지를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선녀 계곡이 나타난다. 안내 센터에 근무하시는 여직원분이 이곳에서 발을 씻고 잠시 쉬어가라고 당부했던 곳이다. 그만큼 풍광이 좋은 곳이다. 발을 씻지는 못하고 잠시 쉬며 간식을 먹고 체력을 회복한다. 거기서부터 바람재까지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낙엽이 떨어진 아무도 없는 로맨틱한 길을 걷는다. 길가에 밤이 많이 떨어져 있다. 가득 익은 밤은 저절로 자기를 풀어헤치고 그 안에 탐스러운 실체를 드러낸다. 알밤을 몇 개 줍는다. 알밤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디어 오늘 목적지인 성심원이 보인다. “1959년 프란치스코 수도회 작은 형제회의 코스탄조 주포니 신부가 설립했다. 설립 목적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받는 한센인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 보호와 치료에 헌신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복지증진을 통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교육관, 성당 등이 있는 제법 규모가 큰 곳이다.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옆을 지나가며 잠시 둘러볼 수밖에 없다.

왼쪽에 남강이 흐르고 둘레길 안내표식이 있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길동무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한 곳이다. 차를 갖고 오는 길동무들은 일부 구간은 같이 걷고, 일부 구간은 차로 이동하며 숙소와 필요한 간식 등을 지원해주기 위해 온 고마운 친구들이다. 앉아서 등산화를 벗고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두 사람의 길동무가 손을 흔들고 걸어온다. 그 친구들도 숙소에서 성심원으로 오면서 밤을 주우며 왔다. 서로 누가 주은 밤이 큰지 내기를 하며 가장 큰 밤을 갖고 있는 친구에게 몰아준다. 일명 밤 도박이다. 만나자마자 시끄럽게 떠들고 웃는다. 그런 사이에 우리의 피로는 사라진다. 새로운 길동무의 출현이 걷는데 활력을 만들어 준다.

성심원에서 숙소까지 900미터 정도 걸어서 올라간다. 길동무들을 만난 즐거움에 오르막길을 걷는 발걸음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처럼 가볍고 경쾌하다. 숙소에 도착했다. 주인께서 빨래를 세탁기와 건조기로 말려주신다고 했다. 그간 대충 해온 빨래를 정리할 수 있으니 마음이 개운하다. 장기간 걸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바로 빨래다. 평상시에는 빨래가 얼마나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장기 도보를 하며 아내의 고마움을 다시금 실감한다.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일을 대신해 주신다니 마음이 가볍다.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을 가족, 주변 친구들, 동료들에게 받고 살아왔지만,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여행에서 배울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일상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와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닭볶음탕이 저녁상에 나왔다. 막걸리 한잔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우리가 걸었던 추억을 나눈다. 그리고 서로 얼굴을 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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