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277]지리산 둘레길 1차 프로젝트 1일 차 주천에서 운봉까지
날짜와 거리: 20210924 19km
코스: 주천에서 운봉까지 외
평균 속도: 3.0km/h
누적거리: 4,94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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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약 세 달 전부터 장기 도보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 아침 일찍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내는 삶은 계란과 초콜릿, 에너지 바 등을 챙겨준다. 문에서 인사를 하는데 아내가 눈을 맞추지 않는다. 헤어짐이 불편한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우리도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다. 미리 헤어지는 연습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헤어질 것이다. 그 헤어짐을 받아들이면서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아리다. 어제는 장모님 모시고 아내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장모님께서 별일 없으시다니 다행이고 길 떠나는데 마음이 편하다. 아내는 내가 길을 걷는 기간에 장모님 모시고 제주 살이 하고 있는 딸아이 집에서 며칠간 보낸다고 하니 길 떠나는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아내는 평상시에는 잠을 잘 자는 편인데, 내가 집에 없으면 잠을 잘 못 이룬다. 밤에 홀로 집에 있으면 홀로 될 수도 있다는 상황이 떠올라 두려움이 몰려온다고 한다.
남원에 도착해서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을 절약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아 서울 역에서 김밥을 샀다. 야채 김밥이 가장 싼 메뉴임에도 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며 여주인이 추천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장사를 하는 분께서 그런 배려를 해주니 고맙다. 매우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고 고객을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에 많이 남는다. 승차 후 세 명의 길동무들은 수다를 시작한다. 한 친구는 승무원에게 간식을 전해준다. 그 친구의 친화력이 돋보인다. 남원 역에 도착하니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 모두 체온 측정을 한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모든 국민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역사 앞 벤치에서 김밥과 삶은 계란을 먹으며 아침 식사를 대신한다. 택시를 타고 주천 안내 센터로 이동했다. 기사가 과격하게 운전한다. 길에 대한 설렘이 다소 과격한 운전에 대한 불안감을 잊게 만든다. 지리산 둘레길 주천 안내 센터에 입장하기 위해서 입구에서 체온 측정과 세정제로 손을 닦아야만 한다. 세 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길에 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 준다. 스텝프 북을 겸한 안내 책자를 세 권 구입했다. 지리산 둘레길 운영은 정부 지원 없이 (사)숲길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책 한 권이나 안내 자료를 구입하는 것이 이 길을 정비하고 홍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안내 센터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출발 지점에서 다시 인증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도 시원하다. 논에는 황금물결이 출렁이고 구름은 빗자루로 쓸어놓은 듯 정갈하다.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들뜬다. 안내 표식이 잘 되어 있어서 길 찾는데 별 무리가 없다. 개미 정지에서 첫 스탬프를 찍었다. 드디어 지리산 둘레길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주천에서 운봉까지 가는 첫 구간 중 내송마을에서 구룡치까지 약 2.5km 정도 오르막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길 정비는 잘 되어있지만 구룡치에 오르는 길이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길동무들과의 즐거운 수다 덕분에 크게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땀을 내고 나니 몸과 마음이 가볍다. 한 친구의 친화력은 최강 갑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몇 사람밖에 만날 수 없었지만 이따금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하며 금방 친구가 된다. 그 친구를 통해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다지 정답거나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지나가도 굳이 말을 걸거나 인사를 먼저 하는 편이 아니다. 그냥 지나친다. 반면 그 친구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어 준다. 사소한 것 같지만, 특히 지리산 둘레길처럼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매우 좋은 인사법이다. 마치 총잡이들이 악수를 청하는 이유가 손에 총을 들고 있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적의와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처럼.
구룡치를 지나 편안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오르막을 오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나무숲이 울창하고 저 멀리 산 능선이 보인다. 아랫마을의 풍요로운 논에 황금물결이 출렁거린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이 마을 사람들 인심이 후할 것 같다. 여유롭고 즐거운 발걸음을 하며 활기차게 걷는다. 길 중간에 식사를 할 만한 마땅한 식당이 없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 입구에 식당이 있긴 한데 뒤돌아 가야 한다. 그 길을 다시 걸어 나오는 것이 부담스러워 식당을 지나치기로 결정한다. 마을 입구에서 친화력 좋은 친구는 주민인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시작한다. 할머니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마을을 지나 저수지를 바라보며 준비해 간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한 친구가 육포를, 다른 친구는 삶은 계란과 에너지 바를 꺼내 나눠 먹는다. 아랫마을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다. 황금 논, 저수지, 청명한 하늘과 멀리 보이는 지리산의 선명한 서북 능선이 아름다운 동양화를 그려낸다.

한참 걷다 보니 쉼터인 양심가게가 나온다. 1코스 마지막 가게라는 안내문이 있다. 주인은 없고 음식을 먹은 후 대금을 지불하고 가면 된다. 음식요금을 적어 놓은 메뉴판 아래에는 농협 계좌번호가 있다.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다. 막걸리 한 통, 컵라면 세 개, 캔 커피 세 잔 먹고 마신 후 충분한 요금을 지불하고 나왔다. 아직도 이런 신뢰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 반갑고 신기하고 고맙다. 서로 믿을 수 있는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한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고 아파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다. 양심가게가 더욱 많아져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의 재충전 역할을 하며 동시에 신뢰와 사랑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양심가게에서 한 친구가 자신의 속내를 편안하게 털어놓는다.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고 있는 친구다. 자신의 힘들었던 상황과 지금 극복하며 발생하고 있는 처지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얘기한다. 속내를 털어놓는 그 친구의 마음이 고맙다. 서로 믿을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친구는 그 친구 얘기를 경청하며 적절한 반응과 얘기를 한다. 그 마음도 고맙다. 서로를 걱정하고 아껴주며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해 주는 지혜도 보기 좋다. 나는 그저 듣고만 있다. 굳이 사족을 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힘든 시간을 몇 년 버티고 지금 터널의 끝에 서 있는 친구는 터널 밖을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조금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자신을 더욱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자신과 가족의 욕구 차이를 느끼며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6년 이상 거의 식물인간으로 살아왔던 친구가 불과 6개월 전부터 노력해서 지금의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한 점은 무척 놀라웠다, 그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도 잘 극복해 낼 것이다. 얘기를 일단락한 후에 계속 걷는다. 운봉에 도착했다. 예약했던 민박집에 전화를 했다. 8호실이 우리가 머물 방이고 문은 열려있다고 주인이 알려줬다. 씻고 빨래까지 한 후에 식사를 하러 나갔다. 흑돼지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며 얘기를 이어간다.
속내를 털어놓은 친구가 말머리를 시작한다. 아까 얘기했던 내용의 연장선이다. 자신의 과거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며 스스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다. 늘 ‘갑’의 위치에 있었던 그 친구는 고기도 누군가가 늘 구워준 고기를 먹었다고 얘기하며 일부러 자신이 고기를 굽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실제 변하고 싶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하는 것이 마음공부이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마음공부의 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과거를 마음공부의 재료로 만들고 과거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만들어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대단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거울이 될 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과거가 자신의 거울이 되어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우 귀한 가르침을 받았다. 길을 걸으며 함께 걷는 길동무들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성찰하고,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자신을 변화시킨다. 길을 걷는 것은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니고 심신 수양을 위한 아주 좋은 방편이다. 특히 길동무는 자신을 비춰주는 매우 귀한 존재이다. 길을 걸을 때 어떤 사람, 누구와 함께 걷는 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인생에 친구가 중요하듯 길을 걷는데 길동무 역시 매우 중요하다. 오늘 함께 걸은 길동무님들께 감사를 표한다.
저녁 식사 후 내일 일정을 얘기했다. 원래 계획보다 조금 더 걷기로 했다. 운봉에서 인월을 지나 장항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약 19km 정도의 길을 걷는다. 오늘 걸어보니 길동무 걷는 속도도 나와 잘 맞고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내일은 어떤 풍경과 상황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