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76] 건강한 독립

걷고 2021. 9. 22. 17:59

날짜와 거리: 20210921 - 20210922 22km
코스: 한강공원 외
평균 속도: 4.7km/h
누적거리: 4,92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추석 연휴가 끝나간다. 어제 차례를 형 집에서 지낸 후 처갓집을 다녀왔다. 명절 때에는 평상시보다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집에 돌아온 후 바로 옷 갈아입고 소화도 시킬 겸 걸으러 나갔다. 한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여유로운 휴식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 할 일을 마친 후련하고 한가한 모습이다. 불광천과 한강 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강 공원 잔디밭에는 자리를 깔고 앉아서 편안하게 노을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누워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가족들과 흥겨운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띈다. 오랜만의 연휴를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비록 코로나로 대면 접촉이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명절을 맞이하여 평상시에 만나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을 만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가운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명절은 즐거운 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부담스러운 날이기도 하다. 본가나 처가 또는 시댁이나 친정을 찾아가고, 얼굴도 모르는 선조들 차례를 지내는 번거로운 과정을 겪기도 하고, 힘들게 먼 길을 다녀오는 수고로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절이 주는 부담감도 크다. 비단 여성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남성들도 아내들의 불편한 심기를 진정시켜 주어야 하고, 처갓집에 머물며 일정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아무리 편안하게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처갓집에 머무는 시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가족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이면서 동시에 부담과 불편함을 주고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유교가 지닌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많다. 유교가 사회의 변화에 맞춰 변모해가지 않는 한 앞으로 점점 유교 문화는 쇠퇴하고 사라질 수도 있다.

명절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나 웃고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그 안에 불편함이 늘 있었다. 가끔 아내는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런 나의 태도를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과연 60대 중반의 남성으로 손주들까지 있는 나에게 가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매년 명절과 기일에 모여 부모님 차례와 제사를 지낸다. 칠순을 넘은 누이들과 팔순을 바라보는 매형들도 이제는 더 이상 참석하지 않는다. 각자 가정에서 자식들과 손주들을 맞이한다. 나의 가족 범위는? 여러 번 생각해 봤다. 내린 결론은 아내, 딸, 사위와 손주들이다. 누이들과 매형, 형, 조카들, 처남 가족들도 있지만, 그들은 가까운 형제와 친척들이고 가족의 범위 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들이 서운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과 장인어른은 돌아가셨고, 장모님만 생존해 계신다. 그래서 지금까지 장모님 댁에 모여 명절을 보냈다. 몇 년 후에는 우리 집에서 손주들을 맞이하고 싶고, 부모님 차례나 제사에 참석하고 싶지 않다. 명절이나 기일에 부모님을 위한 나만의 기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 집에서 우리 가족끼리 모여 오손도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녹녹하지 않다는 생각을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하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족들과의 끈끈한 인연 때문이다. 물론 가족들의 사랑과 지지, 깊은 인연은 너무 고맙고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인연의 구속에 묶여 살아야 할까? 자식들도 성인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교육시키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공부와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들이 결혼하거나 성인이 된 후에는 그들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도움 요청 시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외의 일은 모두 참견이나 간섭, 또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부모들 역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의지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아이들이 성장 후 자신들의 삶을 시작할 때, 부모들 역시 자신들의 삶을 시작해야만 한다.

“양육의 최종 목표는 건강한 독립이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사랑이 필요한 자식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베풀고 건강하게 독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의 역할은 거기까지이다. 그 외의 일은 아이들에게 맡기고 마음속으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당당하게 그들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건강한 독립은 부모들에게도 해당된다. 아이들이 부모 곁을 떠나 살아가듯, 부모들 역시 자신들의 부모나 아이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더 이상 우리 자식들이 아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지지를 해 주는 존재이고,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는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이 아닌 자연인으로 우리 곁을 떠나게 되어 있는 존재이다. 우리의 자식들이 아닌 자연인이 된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고, 그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이다.

부모, 형제, 친척, 선생님, 친구,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들 등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성숙한다. 그리고 일정한 시기가 지난 후에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의 거울이 되어준다.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반성을 통해 변모하게 된다. 주변에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홀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모든 인연에서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시간을 보내며 자신만의 삶과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명절 때 또는 가족들 만날 때 가끔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서서히 주도권을 되찾고 싶다. 수년 내에 그렇게 할 것이다. 아내는 이런 나의 모습이 이기적이라고 한다. 그 말로 인해 언쟁을 하지도 않지만, 기분이 좋지도 않다. 하지만 예전처럼 화를 내지는 않는다. 아내와 나의 살아온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뿐이다. 이제는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모든 사람들과의 끈끈한 인연으로부터,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다. 이런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평가나 시선을 신경 쓸 때가 아니고, 그런 일에 사용할 에너지나 시간도 없다. 나의 삶과 죽음을 준비하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

오늘 봉산을 걸으며 과거에 이 산을 올랐을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고혈압이 안정되지 않아 힘든 시간에도 이 산에 올랐다. 스트레스로 인한 심한 두통으로 30분 이상 책을 볼 수가 없을 때도 봉산에 올랐다. 마라톤 연습을 하기 위해 뛰면서 올랐다. 이 산은 내가 ‘건강한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또한 건강한 독립을 위한 삶의 길도 열어주었다. 그 길은 건강한 독립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걷기를 통해 독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봉산에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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