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68] 행복의 전구

걷고 2021. 8. 27. 18:50

날짜와 거리: 20210826 - 20210827   12km

코스: 일상 속 걷기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4,71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최근에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차이 나는 클래스’라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행복 연구 전문가인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가 ‘행복의 전구를 켜세요’라는 주제로 강의와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서 교수는 행복에는 ‘심리적 자유’와 ‘사회적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다. ‘심리적 자유’는 자기 결정권을 갖는 자유와 이것을 존중해주는 사회 환경을 의미한다. ‘사회적 신뢰’는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과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고 한다. 자기 주도권을 지니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살아가는 경험,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편안하게 받을 수 있는 경험을 통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외부 조건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경제적인 부의 성취, 명예와 권력의 성취, 타인보다 우월적인 지위를 차지하려는 우월감의 성취 등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행복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갖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성취된 외부 조건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잊히게 되거나 그 의미가 퇴색하게 된다. 처음 승진할 때에는 기쁨이 크겠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기쁨보다는 업무에 대한 부담감을 더 느낄 수도 있다. 외부 조건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기쁨과 쾌감, 즐거움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른 스트레스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괴로움과 고통, 슬픔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서서히 극복되고 일상으로 회복하게 된다. 모든 외부 조건은 변하게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무상(無常)이다.  

Bro Bro  최연돈최연우 작품전 사진

서 교수는 행복의 조건으로 ‘사람’을 얘기하고 있다. 사람과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불행감을 느끼기도 한다. 강의 내용 중 미국 한 청년의 얘기가 나온다. 애인과 헤어진 후 외로움을 느낀 미국 청년은 어떤 얘기든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는 안내문을 시내 곳곳에 붙였다. 7만 명의 사람들이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고, 고통을 편안하게 얘기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많은 연락이 왔다고 한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과 SNS 외에도 대화를 위한 다양한 채널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더욱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서 교수는 강의 마지막에 “행복의 전구를 켜는 좋은 방법은 좋은 사람과 밥 먹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이 사람과의 경험에 의해 좌우된다고 강조하며 맺음말로 좋은 사람 만나서 식사를 함께 하며 좋은 경험을 하라는 앞뒤가 딱 들어맞는 멋진 강의다.

 

그의 제안을 듣자마자 ‘아! 바로 이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만나는 일에 조금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편이다. 사람들과의 경험 중 불편한 경험도 제법 있었고 내향적 성격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홀로 있어도 편안하게 잘 지내는 편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며 사람들에게 다가갈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라도 먼저 연락해서 식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을 위한 준비도 설레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도 기쁘고, 만나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떠는 것도 즐겁고, 그 추억을 글로 옮기거나 마음속에 간직하며 나중에 들춰보는 재미도 제법 클 것이다. 

Bro Bro 최연돈 최연우 작품전

오늘 친구 전시회에 다녀왔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최연돈님이 재미화가인 동생 최연우와 함께 콜라보 전시회를 안양 이르킴 Irkim 갤러리에서 2021. 8. 10 – 2021. 9. 17일까지 전시하고 있다. 그는 작품을 위빙(weaving) 기법을 통해 완성한다고 한다. 대나무를 얇게 잘라 염색을 한 후에 마치 뜨개질하듯 가로세로로 엮어서 작품을 완성시키는 기법이다. 마치 베틀로 날실과 씨실을 짜서 피륙을 만드는 과정처럼 실 대신 대나무를 엮어서 작품을 완성시킨다. 멀리서 보면 멋진 그림인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서로 얽혀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품인 것 같다. 한쪽 벽에는 동생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다른 벽에는 그가 걸으며 찍었던 산티아고 사진과 10년 이상 찍었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사람과 자연을 위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사람들 모습을 보면 모두 어딘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진들이 많다.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차를 마시거나, 노래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등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진이 많다. 그간 늘 몰두하고 살아온 작가 모습의 투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는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대기업 중역으로 퇴임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음악과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고, 꾸준히 산행을 하며 지내왔다. 지금은 사진, 음악, 걷기, 독서를 즐기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Bro Bro 최연돈 최연우 작품전

전시회를 본 후에 자장면 한 그릇을 같이 하고 헤어졌다. 그가 가족 모임이 있어서였다. 오늘 전시장에는 나 밖에 없었다. 굳이 열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간다고 하니 나 때문에 일부러 나온 것 같아 괜히 미안하다. 그는 그런 티를 내지도 않았고, 동생 작품을 열심히 설명해주었으며 심지어 태블릿 PC를 통해 동생의 외국 전시회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생과 누나와 함께 여수 남파랑길도 같이 걸었고, 누나와는 둘이서 지리산 둘레길 일부 코스도 걸었다고 한다. 가족 얘기를 편안하게 하고 형제들 간 우애 좋게 지내는 모습도 보기 좋다. 앞으로 서로 시간이 맞으면 가끔 같이 걷기로 했다. 좋은 길동무와 함께 걷는 재미도 밥 먹는 것 이상으로 행복의 전구를 켜는 멋진 방법이 될 수 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식사를 함께 할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학교 친구들은 별로 없고 영어회화 서클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먼저 떠올랐다.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친구들, 사업을 하면서 만난 거래처 친구들, 불교 공부를 함께 했던 친구들, 스님들이 떠올랐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함께 하고 또 함께 걷고 싶다. 그간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면, 이제는 가끔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홀로 또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건강한 삶이다. 

Bro Bro 최연돈 최연우 작품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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