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64] 지리산 둘레길

걷고 2021. 8. 19. 10:53

날짜와 거리: 20210816 -20210818   31km

코스: 안산 – 홍제천 – 불광천 

평균 속도: 4.1km

누적거리: 4,66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그제 밤에 과식을 해서 그런지 속이 영 불편하다. 위가 아프기도 하고 쓰리기도 하다. 원래 과식하는 편이 아닌데, 먹던 음식 남기는 것이 불편해서 먹었던 것이 탈이 난 것 같다. 덕분에 어제부터 죽을 먹고 있다. 평상시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 그런지 죽을 한 두 끼 먹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오히려 속을 비울 수 있어서 좋은 거 같다. 안산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나갔다가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취소가 되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덕분에 홀로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햇빛은 강하지만 바람도 솔솔 불어오고, 안산에 그늘이 많아서 걷기에 아주 쾌적한 분위기다. 높게 떠 있는 하얀색의 구름과 푸른색의 하늘은 서로의 색을 더욱 부각해주고 있다. 푸른 바탕에 하얀 구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안산에서 바라본 북악산의 능선 또한 매우 선명하다. 전날 내린 비 영향인지 미세 먼지도 없어서 멀리 서 있는 산도 아주 가깝게 보인다. 안산 방죽을 지나 물레방아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홍제천을 지나 집까지 걸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뛰고 있다. 이제 코로나로 홀로서기에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코로나는 빨리 사라지길 바라지만, 가끔 사람들은 홀로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함께 또 홀로 살아가는 방법은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8월 23일에 맞고 2주 이상이 지난 시점과 추석을 고려하여 9월 24일부터 10월 3일까지 9박 10일간 걸을 계획이다. 출발지에 도착하는 방법만 알면 그 이후는 길에서 방법을 찾아 걸을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주천에서 시작된다. 총 21개 구간으로 289.4km의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다. 서울 (용산역)에서 남원까지 KTX를 타고 간 후에 남원에서 주천까지 택시를 이용할 생각이다. 택시로 약 10분 정도 걸린다 하니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다. 첫날 코스가 주천에서 운봉까지로 14.7km, 약 5시간 정도 예상된다. 기차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오전 7시 5분에 용산역에서 출발해서 9시 19분에 남원역 도착이다. 남원역에서 택시로 주천까지 이동하면 오전 10시부터 걷기를 시작할 수 있다. 운봉에 도착하면 오후 네 시경 첫날 일정을 마칠 수 있다. 짧은 구간은 10km 정도, 긴 구간은 20km 정도이다. 한 구간을 시작해서 끝나는 중간중간에 마을이 있는 것 같다. 짧은 구간과 긴 구간을 중간 마을을 이용해서 좀 더 걷거나 일찍 마칠 수 있도록 다음 날 걸을 코스를 결정하면 무리 없이 이번 기간 중 전 코스의 반 정도를 마칠 수 있다. 나머지 구간은 내년 초쯤 마저 걸을 계획이다. 앞으로 매년 서너 번 열흘 정도 집중적으로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코리아 둘레길을 완주할 계획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위한 짐을 준비해서 38리터의 배낭에 넣고 몇 번 걸었다. 여벌 등산복, 약, 내의, 우의, 세면도구, 양말, 샌들, 선크림과 선글라스 등 필요한 짐을 챙겨서 걷고, 걸은 후 짐을 풀어본다. 불필요한 짐은 없는지, 또는 짐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안한 위치에 넣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짐을 싸고 풀고 사용하는 것은 아무리 오랫동안 해 온 일이라도 여전히 귀찮고 잘 못하는 일이다. 느리고, 어설프고, 뭔가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술한 사람이다. 그래서 좀 더 편한 방법을 찾는 대신 그냥 몸으로 때우는 편이다. 그것이 사소한 일에 신경 안 쓰고 걷기에 집중하기 좋아서이다. 스스로 타협점을 찾아낸 것이다. 짐은 가기 전까지 반복해서 채우고, 비우고, 바꾸고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정리가 될 것이다. 들고 갈 짐을 메고 걸어보니 아직 걸을 만하다. 무게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다지 무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오른쪽 어깨에 가끔 통증이 느껴진다. 살이 없고 앙상한 뼈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어깨 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서 통증을 조절하니 조금 덜 한 것 같다. 

 

시간 날 때마다 배낭을 메고 서울 둘레길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위한 훈련을 할 생각이다. 지리산 둘레길이 처음에는 5개 구간만 조성되었다. 그중 세 개 구간을 예전에 걸었다. 주천에서 운봉 구간은 그 이후에 다시 한번 걸었던 기억이 난다. 산길이라 쉬운 길은 아니지만, 서울 둘레길 코스 중 난이도 ‘상’을 생각하고 걸으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힘들어도 그냥 걸으면 된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니 마음이 설렌다. 약간의 두려움도 있다. 그 두려움은 긴장감이기도 하다. 그런 긴장은 오히려 삶에 활력이 된다. 준비를 하고 있는 이런 과정 자체도 매우 즐겁다. 인터넷으로 길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지리산 둘레길 간다는 소문을 내기도 한다. 소문을 내면 공언(公言)이 되고, 공언이 되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자승자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책임을 지키기 위해 걷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가끔 자신을 코너에 몰아붙이는 일도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다. 평상시에 하루 종일 별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삶에서 뭔가를 이루겠다는 삶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다. 

친구 한 명이 함께 걷기로 했다. 다른 한 친구는 고민 중에 있다. 누구와 함께 걷든 혼자 걷든, 또는 걷는 도중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나는 전 구간을 내 두 발로 걸으며 마칠 생각이다. 하루 이틀 정도 같이 걷겠다는 친구들도 있다. 언제, 어디에서 만나게 될지는 모르고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면 같이 걷고 오지 않으면 혼자 걸으면 된다. 홀로 걷는 것도 좋고, 함께 걷는 것도 좋다. 길동무들과 함께 걷는 즐거움도 걷기의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홀로 걷는 즐거움도 함께 걷는 것 못지않게 그 즐거움이 크다. 가끔 하루 일정을 마친 후에 홀로 보내는 저녁 시간이 길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매일 걸은 길에 대한 느낌을 글로 쓰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갈 것이다. 당일 걸었던 사진과 코스, 거리 등을 정리해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글 쓰고, SNS에 업로드하면 저녁 시간이 오히려 부족할 것이다. 물론 길동무들이 있으면 함께 막걸리 마시며 저녁 시간을 풍성하게 보낼 수 있다. 

 

혼자 또는 동호회에서 함께 자주 걷는 편이다. 거의 매일 걷는 편이다. 그럼에도 걷기에 대한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이런 욕심은 좀 더 부리고 싶다. 하루 종일 아무 할 일 없이 걷기만 하는 일상이 그립다. 산티아고 추억도 되살아난다. 걸으며 느끼는 자유는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 그런 해방감이 그립다. 지금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더 자유롭고 싶다. 매년 서너 번씩 열흘 또는 그 이상 걷기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바로 이 ‘자유로움’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정확히 걷는 이유를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걸으면 마음속에서 즐거움이 저절로 올라온다. 가슴 깊은 곳에 침전되어 있던 희열과 자유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걸으며 느낀 점을 글과 사진으로 정리하면 삶이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정리는 자유의 반대이기도 하지만, 절제된 자유는 무절제한 방종과는 다르다. 결국 ‘자유’가 걷는 이유구나. 오늘 떠오른 생각이다. 지리산 둘레길 떠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훈련 삼아 서울 둘레길 걸을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이만큼 걷기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한 가지를 찾아서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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