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62] 스위치 (switch)

걷고 2021. 8. 14. 18:30

날짜와 거리: 21210813 - 20210814 23km
코스: 서울 둘레길 증산역에서 가양역까지 외
평균 속도: 4.5km
누적거리: 4,64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걷기 동호회에서 서울 둘레길 안내하는 날이다. 더운 날씨여서 오전 10시에 출발한다. 인원 제한이 있어서 4명 이하로 운영하고 있다. 빨리 코로나로부터 해방되어 많은 인원들이 참석하게 되길 바랄 뿐이다. 인원 제한 때문에 참석 신청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증산역에서 10시에 만났다. 세 명의 참석자 중 두 분은 처음 참석한 분들이다. 한 회원 닉네임이 ‘스위치’여서 무슨 의미냐고 물어봤다. 생활의 변화가 필요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스위치 (switch)’의 정확한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전환하다, 바꾸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매우 적극적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자신 스스로 스위치라 부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도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오늘 걷기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스위치가 필요해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여성 회원은 요가와 필라테스 등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코로나로 운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몸 건강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참석했다고 한다. 오늘 처음 참석한 남성 회원은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기 위해 걷고 있다고 한다. 인생 전반부를 열심히 살아왔고, 전반부를 돌아보며 후회 없는 인생 2막을 구상하고 준비하기 위해 참석했다. 홀로 아침저녁으로 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고, 걷기 동호회 활동을 통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걷기 위해 참석했다. 나를 포함해서 오늘 참석자 모두 일상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 변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자 참석했다고 볼 수 있다.

삶을 스스로 스위치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이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몸에 익숙한 것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강해서 몸에 밴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오른쪽 팔을 쓰는 사람들의 팔 근육이 왼쪽 팔 근육보다 강한 이유는 그만큼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왼팔보다 오른팔을 먼저 쓰게 된다. 그만큼 왼쪽 팔 근육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사용할 확률이 줄어들면서 점점 더 약해진다. 우리네 습관도 그와 같아서 습관의 변화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잘 알고 있지만, 나쁜 습관을 고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스위치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필요한 작업은 ‘자각’이다. 자신의 나쁜 습관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익숙한 습관은 자각을 한 순간에 잊게 만든다. 자각은 순간적인 것에 비해, 습관은 오랜 기간 익숙해진 것이다. 왼팔이 오른팔을 이기기 힘들듯이, 자각을 한다고 해도 바로 습관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자각을 한 후에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예전의 습관을 빨리 알아차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꾸준히 하다 보면 서서히 새로운 습관이 체득된다. 나쁜 습관이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지 삶을 돌아보는 것도 스위치를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자각과 연습, 반성이 삼위일체가 되어 서서히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자각과 망각의 반복과 싸움 속에서 좋은 습관이 형성될 수 있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미국인 여성을 만나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70세인 그 여성은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리셋 (reset) 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남편은 치매, 아들은 이름 모를 질병에 걸려있고, 손주 역시 병마와 싸우고 있다. 친구들도 모두 고향을 떠났고, 홀로 가족들을 돌보는 자신의 모습이 비참해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아들에게 얘기하고 산티아고 순례를 감행했다. 그녀의 배낭은 몸에 비해 무척 컸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며, 발바닥에 물집이 크게 생겨서 고통스럽게 뒤우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짐이 많이 줄어들었고 배낭 뒷모습도 훨씬 안정적으로 정돈되어가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25년간 입고 있었던 셔츠도 버리게 되었다. 그 셔츠를 버리며 무척 안타깝고 아쉬워했던 얼굴 모습이 떠오른다. 짐을 정리하며 불필요한 짐은 집으로 보냈거나 버리며 완주를 위한 각오를 다지며 걸었다. 그녀는 결국 총 800km에 달하는 산티이고 순례를 마쳤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이 완주했다는 것을 내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오랫동안 입고 있던 자신의 옷을 버린 것은 어쩌면 과거의 자신과 이별을 한 반증일 것이다. 짐을 버린 것은 마음속 과거의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불안감, 두려움, 자신감의 부족 등으로 인해 필요 이상의 짐을 준비해 온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걸으러 온 사람들이 길이 끝날 때까지 짐을 메고 다니며 그 짐이 또 다른 짐이 된다. 나 역시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이 30% 이상이나 된다는 사실을 귀국 후 알게 되었다. 마음을 비우기 위해, 또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걸으면서 일상 속 마음과 짐을 그대로 들고 온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과거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며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그녀는 자신의 산티아고 순례 목적을 ‘인생의 리셋 (reset)’이라고 했다. 아마 귀국 후 스스로 리셋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리셋’은 스위치보다 좀 더 어려운 일이다. ‘리셋’의 사전적 의미는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일’이다. 삶의 변화가 아니고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과거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일이다. 과연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만큼 절실했고, 간절했고, 죽음을 택하기 바로 직전에 순례를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그 절실함과 간절함이 그녀를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는 엄청난 고통을 통해서.

삶에서 스위치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리셋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하며 둘 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이기에, 감히 다른 사람의 삶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태도를 취하면 된다. 나를 포함해서 오늘 참석하신 분들은 삶의 스위치가 필요한 사람들인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현재의 삶보다 나은 행복한 삶을 원하고, 그 삶을 성취하기 위해 직접 실천을 감행한 용감한 사람들이다. 생각이 생각에서 멈추면 의미가 없다. 생각이 현실화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설사 생각대로 실천하다 실패를 맞이하게 된다고 해도, 그 실패는 삶의 거름이 될 수 있다.

요즘 나의 삶은 편안하다. 하지만 활력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추석 이후에 지리산 둘레길을 열흘 간 걸으려 한다. 아내의 허락을 받았다. 산티아고에서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힘으로 4년을 살아왔다. 다시 길을 걸으며 길 속에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삶을 좀 더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연말이나 내년 초에 다시 한번 열흘 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완주할 계획이다. 완주 후에는 다른 길을 걷고 싶을 것이다. 나는 길 속에서 살아야 할 사람인 것 같다. 때로는 홀로, 때로는 함께 걸으며 스위치가 필요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걷고 싶다. ‘걷고’라는 닉네임은 비록 내가 우연히 만든 이름이지만, 이름은 그 값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 만든 이름값을 해내기 위해 앞으로도 걷고 또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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