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의 걷기 일기 0177] 일상이 기적이다
날짜와 거리:
코스
누적거리: 3,22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제는 점심 식사 후에 아내와 함께 외손녀를 픽업하기 위해 나섰다. 요즘은 손녀를 어린이 집에서 픽업하고 딸 집에 가서 손녀와 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덕분에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며 데이트를 한다. 아내는 오전부터 분주하다. 음식도 준비하고 딸 집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한다. 준비한 음식을 행여 잊고 갈까 걱정이 되어 종이 한 장에 준비물을 기록하는 꼼꼼함도 보인다. 그럼에도 차 타고 나가면 늘 뭔가를 두고 나오기도 한다. 과일 가게에 들러 과일을 산 후에 1시간 반 이상 운전해서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내가 손녀를 안고 나오고, 손녀는 신이 난 듯 노래를 부르고 있다. 차 안에서도 손녀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아내는 그 모습을 동영상에 담는다.
딸 집에 가서 아내는 음식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느라 바쁘고, 나는 손녀에게 음식을 먹이고 놀아주느라 바쁘다. 둘 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각자 할 일이 바쁘다. 손녀는 음식 먹다가 책을 보기도 하고, 블록 놀이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아내는 손녀가 노래 부르거나, 말하는 시간 외에는 먹기만 한다고 흐뭇한 모습으로 얘기한다. 잘 먹은 덕분에 네 살이 된 지금까지 병원을 한 번도 다녀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가끔 엄마 생각이 나는지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다. 마음이 짠해진다. 그럼에도 엄마가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있다고 하며 스스로 달래고 다시 놀이에 집중한다. 며칠 전 동생이 태어났고, 딸은 손자와 함께 산후 조리원에 있다. 오후 6시 넘어 사위가 할 일을 마쳤고, 아내가 사위 저녁을 차려준 뒤에 우리는 딸 집에서 나올 수 있었다. 아내는 장모님과 사돈에게 손녀가 놀고 노래하는 동영상을 보내주며 안부를 전한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밤에 가만히 생각하니 지금 이 상황이 모두 외손자가 태어남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 갓난 아이는 말도 못 하고, 혼자 움직이지도 못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인데, 그 아이 덕분에 온 가족들이 모두 즐거운 호들갑을 떨고 있다. 운전하며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손자 덕분에 많은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딸과 손자는 산후 조리원에서 지낸다. 외손녀는 갑자기 ‘아이’에서 동생이 생긴 ‘누나’가 되었고, ‘장녀’가 되었고, ‘큰 아이’가 되었다. 사위와 딸은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사위는 오늘 1박 2일로 손녀와 단 둘이 양양에 바다를 보러 간다. 아내와 나는 손녀를 챙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모님과 사돈은 동영상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모두 한 생명이 태어남으로써 생긴 변화이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를 호령하듯 부리고 있고, 우리는 그 호령에 꼼짝도 못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무조건 명령을 받들어 모신다. 이런 사실 자체가 기적이다. 새 생명이 태어난 것 자체가 기적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갓난 아이가 우리를 호령하는 것도 기적이고, 그 아이로 인해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도 기적이다. 세계 인구가 한 명 늘었고, 남성 숫자가 한 명 증가했다.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는 역할이 생기고, 산후 조리원 근무원들도 할 일이 생겼다. 사위 회사에서 큰 꽃다발이 왔고, 꽃 가게는 덕분에 일을 한다. 나는 상담 예약을 연기했고, 내담자는 자신의 일정을 조정한다. 아내 역시 개인적인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친구들은 변화된 일정에 맞춰 생활한다.
가족은, 우리는, 모든 존재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 ‘종이 한 장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무는 햇빛과 물이 있어야 성장한다. 자연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벌목하고 공장에 들어가는 일 역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유통 과정을 통해서 우리 손에 전달된다. 종이 한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자연과 무수한 존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종이 한 장 만드는데도 이만한 도움이 필요한데, 하물며 한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노력이 필요할까? 모든 존재를 상호 연결되어 있는 그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물의 한 코를 들어 올리면 주변의 그물코가 따라 올라온다. 만약 그물코 하나가 뜯어졌다면, 주변 그물코에 영향과 부담을 주고, 급기야 그 그물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한 아이의 올바른 성장은 그 아이 한 명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사회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에게 사랑과 격려와 인내가 필요한 이유이다.
며칠 전 장모님께서 만드신 보석 십자수를 보내오셨다. 바탕 판 위에 수많은 알맹이를 하나하나 붙여서 만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 장의 그림이지만, 그 그림은 아주 작은 알맹이들로 만들어져 있다. 수천 개의 알맹이 중 단 한 개만 빠져도 제대로 된 그림이 만들어질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정, 무정들은 각자 할 일이 있다. 심지어 길 가에 있는 돌 하나도 존재의 이유가 있다. 돌 하나, 나무 하나, 꽃 한 송이가 세상을 이루고 있고, 이런 사실이 기적이다. 그들이 없다면 세계는 알맹이가 부족한 그림처럼 될 수밖에 없다. 사소한 듯 보이는 모든 것들이 세상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눈 뜨고, 해가 뜨고, 바람과 꽃 향기를 맡고, 하늘을 바라보고, 밥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이 모두 기적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외손자가 건강하게 성장해서 자신의 소명을 찾고 완수하길 기원한다.